허구연이 전하는 야구의 모든것

[최종준의 스포츠人탐색] ①‘허프라’ 허구연, “인프라 확대는 야구 산업화의 시작” - MK스포츠(2016.11.21)

허프라 ㅣ 2016.12.16 16:18

스포츠는 사람이 만들어가는 스토리입니다. MK스포츠는 대한체육회 사무총장과 LG-SK 야구단 단장, 대구FC 사장을 역임한 최종준 MK스포츠 전문위원과의 대담을 통해 스포츠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최종준의 스포츠人탐색’을 연재합니다.

그가 만난 11월의 스포츠인은 KBO의 역사와 함께 활동해 온 국내 최장수 해설가이자 한국야구의 ‘인프라 전도사’ 허구연 MBC 해설위원입니다. (편집자 주)

 기사의 0번째 이미지
51년생 동갑내기인 최종준 위원과 허구연 위원은 40년 지기다. 한국 야구에 관한 열띤 토론으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사진=김승진 기자
▶‘야구인프라는 내 운명’ 허구연의 사명감

최종준 위원(이하 최) = 처음 만났을 때의 인연을 떠올리면 우리가 근 40년 된 사이입니다.(웃음) 제가 LG그룹에 입사해서 얼마 안됐을 때니까요. LG상사(당시 반도상사) 직장야구단이 당시 직장리그에서 꽤 강한 팀이었습니다. 그때 인스트럭터로 허구연 위원이 우리 팀을 보러오셨죠. 당시 대학원에 재학 중이셨나요? 다리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그만둔 뒤 학업으로 돌아가셔서 고려대 법대 대학원에서 수학하셨을 때로 기억됩니다만.

허구연 위원(이하 허) = 네. 그 팀이 참 야구를 잘했습니다. 평범한 직장인들이 취미로 운동하는 수준을 한참 뛰어넘는 팀이었죠. 허창수 전경련회장(GS그룹) 구본능 총재(KBO) 구자열 회장(LS그룹)들이 다 활약하셨던 팀인데 그 어른들도 당시 야구를 놀랍도록 잘했습니다.

최 = 허정수 회장(GS네오텍)도 진짜 야구 잘했던 선수였죠.

허 = 그 중에서도 제 눈에 확 띄었던 왼손 투수는 무려 훗날의 송진우 선수와 비슷한 스타일이었죠. 그 투수가 최종준 위원이에요.(웃음) 당시 기준으로 제가 본 아마추어 선수 중에 가장 영리하게 야구를 잘했죠.

최 = 감사합니다. 제가 27살 때 LG그룹에 입사했으니까, 그때가 20대 후반 시절입니다.

허 = 그 때 만났던 그 분을 나중에 야구단 단장으로 재회하게 될 줄은……. 잘 안 풀리신 거 아닙니까? LG상사에 계속 계셨으면 지금은 더 좋은 자리에 있으셨을 것 같은데…….(웃음)

최 = LG 야구단 창단하면서 LG스포츠로 건너왔는데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보람 있게 할 수 있는 인생이 됐다고 생각합니다.(웃음) 제가 야구계에 있었을 때는 물론이고 나중에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을 하면서 진천선수촌에 야구장 건립을 추진할 때도 상의를 많이 드렸는데, 야구 인프라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은 허위원 같은 분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당시 대한야구협회의 반응에는 크게 실망했던 적이 있어서…….

허 = 야구계가 일단 이런 문제에 관심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일례로 정부가 4대강사업을 구상하던 초기 계획에 야구장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국토건설부와 수자원공사 등이 수변시설을 기획하는데 가장 수월하게 그려 넣을 수 있는 것이 축구장, 농구대 등이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전국에 사회인 야구팀이 1만5000개가 넘는다는데, 이분들이 경기할 공간이 없다고 아우성입니다. 현실이 이런데도 야구계의 주도적인 노력이 부족해요. 말로 다하지 못할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만, 결국 42개 야구장이 4대강사업에 포함이 된 것은 가슴 뿌듯한 결과였습니다.

최 = 하도 인프라 말씀을 많이 하셔서 팬들이 ‘허프라’라는 애칭으로 부르던데, 야구계 인프라 확대에 관해서는 독보적인 노력을 해오셨습니다.

허 = 다들 아시다시피 인프라 확대는 야구인들 단독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정치권과 지자체를 움직여야 하는데, 그분들의 협조를 얻어내기 위해선 어떤 노력도 1회성으로 끝나선 안 됩니다.

마라톤을 달리는 심정으로 끊임없이 우리의 노력에 민심을 담아내고 이게 표로 연결된다는 걸 보여줘야 합니다. 야구장에 대한 투자가 시민들을 기쁘게 하고 행복한 시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적극적으로 알려야 합니다. 저는 틈만 나면 말했습니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주어지는 자리에 있어서 또 감사했고요.

대구시민구장이 참 노후한 구장이었는데 정말 오래 사용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아무리 말을 해도 잘 (개선이) 안 되니까, 나중에는 아예 대구구장을 건드리지 말자고 했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이제 이 구장은 손도 대지말자. 차라리 100년 후 시카고의 리글리필드나 보스턴의 펜웨이파크와 같이 아주 ‘유적(遺蹟)’ 컨셉으로 가자.

최 = 전략적인 노선 변경이었군요.(웃음)

허 = 저는 김범일 전 대구시장이 참 고맙습니다. 그 분이 어느 학교를 가셨을 때 대학생들이 “야구장 지어주세요” 그랬답니다. 그 말을 흘려듣지 않고 결국 중요한 결정을 해주셨어요. 저는 그 이후에 중계방송을 할 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김범일 시장님, 참 고맙습니다.”라고.

계속 말해야 합니다. 메시지가 중요하니까요.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걸 얻었을 때 또 잊지 않고 고마워해야 합니다.

최 = 야구발전위원회를 맡으면서 인프라와 투자에 관한 노력을 정말 많이 하셨죠?

허 = 제가 그 자리를 유영구 총재 당시에 맡았는데요. 2009년이었나요? 그 때 처음으로 전수조사를 했습니다. 잠실구장부터 초등학교 운동장까지 다 헤아렸는데 160곳이 조금 넘었습니다. 기가 찼습니다. 그동안 제가 정말 안 다닌 곳이 없습니다. 평창에 이제 야구장이 국제규격으로 있습니다. 의령에 야구장 3개면이 있어요. 작년 통계로 지금 대한민국의 야구장은 400곳이 넘습니다.

최 = 정말 ‘인프라 전도사’라는 별명에 걸맞은 활약이셨습니다.

허 = 이게 내가 할 일이라는 사명감이 있습니다. 한국야구를 위해 누군가가 해야 할 일들 중에 이 일 만큼은 내가 정말 열심히 해보자는 결심이 있습니다.

 기사의 1번째 이미지
허구연 위원은 야구 인프라 확대에 앞장서는 일에 사명감을 느끼고 있다.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자부심도 크다. 사진=김승진 기자
▶리그의 위기? 아마야구부터 풀어야

최 = 제가 야구단장도 해보고 축구단장도 해봤지만, 올림픽과 WBC 등으로 폭발한 야구의 인기와 붐업에 비해서 유소년 시스템, 인프라에 대한 투자와 관심에 있어서는 야구계와 축구계가 비교가 힘든 수준입니다. 국내 리그의 인기는 게임이 안 되는데 행정력 부분에서는 역전 현상이 두드러져요. 축구는 FIFA도 그렇지만, 국내에서도 대한축구협회가 통합적인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 장점이 큰 것 같습니다.

그에 반해 야구계는 이게 너무나 민주적이라고 할까요.(웃음) 야구계 전체의 이익을 위해 움직일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리기에는 힘든 구조에요. 10구단 확대도 그렇고 올해는 800만 관중까지 돌파했지만 KBO는 성장의 내실이 아쉽죠?

허 = 안타깝지만 저는 여러 자리에서 말했습니다. 한국야구는 사상누각이라고. 이 위기를 제대로 인식해야 합니다.

저는 프로의 문제, 아마의 문제를 모두 보고 있습니다. 먼저 프로의 가장 큰 문제는 여전히 산업화에 대한 접근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야구단의 목표에 ‘홍보’와 ‘기업이익의 사회 환원’ 이런 말들은 이미 옛말입니다. 계속 큰 적자를 내면서 야구단을 운영하라고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인프라가 중요합니다. 야구단이 경기장 운영권, 광고권을 가져오고 어떻게든 수익을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꼭 어마어마한 대기업이 엄청난 출혈을 결심해야만 운영할 수 있는 팀이 아닌, 어느 정도 건강한 기업이라면 ‘해볼 만한데?’ 하고 달려들 수 있는 산업이 돼야 야구계에 대한 투자가 활성화됩니다.

저는 구단의 전문적인 경영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우선 드리고 싶습니다. 오너의 인식 전환이 중요하겠죠. 야구단은 아무나 맡기면 경영할 수 있다는 오해를 버리고 사장, 단장부터 전문적으로 구성하는 진짜 프로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오너들이 야구를 산업으로 인식해야 그 조직에 전문가를 둡니다.

두산이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는데, 그 성과는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김승영 사장, 김태룡 단장은 야구판에 수십 년 헌신하며 기량을 닦은 분들입니다. 잘 지켜보면 꾸준히 포스트시즌에 들어가는 팀들은 프런트 조직 내에 야구 전문가들의 비율이 높습니다. 팀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고, 투자도 꽤 했는데 이상하게 잘 안 되는 팀들? 외풍이 셉니다. 모그룹이 비전문가 출신 뜬금없는 경영 수뇌진을 자주 내려 보내는 구단들입니다.

최 = 이제 프로야구가 복합적인 기능이 조화롭게 운영 되어야 하는 스포츠단체이고 그래서 프런트의 전문성이 중요하다는 것은 공통된 생각인데 그러한 인식이 미흡한 구단이 아직도 있더군요.(웃음)

허 = 이미 그런 시대가 된 것이죠. 다음으로 아마야구의 문제는 정말 대수술이 필요합니다. 이 문제는 대한체육회나 체육계에서 해결할 부분보다 교육부에서 해결할 부분이 더 큽니다. 대회일정도 문제, 학교 팀들의 해외전지훈련도 문제, 이런저런 말들이 많은데 이 걸 체육회의 관리나 체육계의 자정 노력으로 바로잡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교육부에서 학원스포츠에 대한 확실한 지침, 매뉴얼을 만들고 건전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교육부에서 칼을 들어야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승부조작이 터지고 해당 선수들이 소속된 구단을 우리가 신랄하게 비판하지만, 극단적으로 얘기해서 야구인들 중에는 구단 탓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겁니다. 다 큰 선수들을 어쩌란 말이냐. 이렇게 억울해할 겁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지르는 선수들은 프로에 와서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아예 초기에 잘못 배운 겁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손대야 하는 부분은 교육이고 아마야구입니다.

최 = 이게 참 야구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네요.

허 = 교육부에 체육행정을 담당하는 국장급 공무원이 없어요. 엘리트스포츠와 스포츠 스타가 결과적으로 갖게 되는 우리 사회에서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이들을 양성하는 과정에서 거기에 걸맞은 교육정책이 따라와 주지 않고 있어요. 저는 체육교육청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 = 체육교육 정책이 독립적으로 고려 받지 못하면 실질적으로 각급 학교운동부의 필요 예산이 학부모의 지원 등에 의존하게 되면서 모든 문제가 시작되죠. 저도 학교 운동비의 운영비는 기본적으로 교육예산에서 집행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허 = 승부조작 사건의 원인이 잘못된 교육에 있음을 똑똑히 인식해야 10년 앞을 바라보는 대책을 연구하게 됩니다. 성인선수들을 때려잡겠다는 목표보다, 학원스포츠를 바로잡겠다는 의지가 더 중요합니다. 체육교육 정책은 선수들의 삶뿐만 아니라 일반학생들의 의식과 인성에도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 미래의 체육정책에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게 됩니다.

지금 특목고와 과학고에 야구나 축구, 농구팀들이 있습니까? 한 팀도 없어요. 그런데 과거에 우리가 ‘명문’으로 동경했던 전국 고교들은 야구팀, 농구팀, 축구팀들을 많이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전통은 입체적이었어요. ‘우리 배재학당 배재학당~’ 노래를 부르면서 학교 야구팀을 응원했던 학생들이 나중에 건강하게 성장해서 사회 곳곳의 일원이 되었을 때, 그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스포츠에 대한 이해, 동료에 대한 이해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날 ‘공부 잘하는 학교’로 꼽히면서 소위 엘리트들을 양성하는 학교들에서는 상대적으로 그와 같은 기회가 적어요. 멀지 않은 장래에 점점 더 스포츠 정책에 대한 홀대, 몰이해가 심해지지 않을지 걱정이 됩니다.

 기사의 2번째 이미지
최종준 위원은 야구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2020도쿄올림픽이 반드시 한단계 더 높은 도약을 이뤄내야 하는 중대한 기회라고 강조했다. 사진=김승진 기자
최 = 학원스포츠가 문체부 이전에 교육부의 문제인 것은 백번 맞는 말씀입니다. 당장은 야구계로 범위를 좁혀서 KBO가 대한야구협회(KBA)를 바로 세우고 건전한 행정지도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하는 것 아닐까요?

허 = 밖에서 보면 그렇게들 보이세요. 그러나 KBA의 회장이 KBO를 무슨 극복의 대상으로 적대시하는 그런 황당한 취임사도 우리가 들었죠? 그렇게 현실과 맞지 않는 상황 판단이 아쉬운 회장이 나오고 그런 회장을 옹립하는 단체가 KBA입니다. 회장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협회 임원진에도 뿌리 깊은 문제가 있다는 거죠. 이런 사람들이 안 바뀌고서는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힘듭니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지금 구본능 총재가 역대 KBO 총재 중에 아마야구에 가장 관심이 많은 분입니다. 아마야구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의사가 있고 실제로 많은 예산을 집행해왔어요. 그런데 대한야구협회가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습니다.

최 = 그래서 현실이 관리단체로 전락했죠. 현실의 어려움을 많이들 말씀하지시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KBO가 어떻게든 아마야구를 살리고 실질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야 할 것입니다. 아마야구는 프로야구의 젖줄이니까요. 야구가 2020도쿄올림픽 정식종목에 다시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야구로선 더 없이 중요한 또 한 번의 기회를 잡은 것인데요. 남녀 동반 종목으로 올림픽에 남을 수 있도록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과 연계해서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기일 것 같습니다.

허 = 정말 소중한 말씀입니다. 그런 면에서 새롭게 선출될 대한야구협회 회장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넓게 볼 수 있고, 구석구석 챙기면서 야구발전을 위해서 헌신할 수 있는 열정을 갖고 있는 분을 기대합니다.

초중고 심지어 여자야구 팀의 문제까지 제가 어마어마한 민원 메일을 받습니다. 이게 얼마나 기막힌 상황입니까? 문제가 있는데 하소연할 마땅한 데가 없으니 낯이라도 익은 저한테 메일들을 보내십니다. 아마야구계에 제 기능을 하고 있는 조직이 없다는 현실이 이렇게 답답한 겁니다.

올림픽은 정말 중요한 기회입니다. 야구계가 이 기회를 잡아 한 단계 점프해야 합니다. 세심한 준비, 확실한 목표를 갖고 올림픽을 바라봐야합니다. 그전에 아시안게임(2018자카르타), 그전에 WBC(2017)가 모두 차근차근한 준비 과정입니다. 대표팀을 선발할 때도 미래를 바라보는 구상이 필요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 WBC 대표팀 1차 엔트리에 리그의 ‘신상품’들이 더 많이 들어가기를 바랐습니다. 고종욱 김하성(이상 넥센) 허경민(두산) 같은 선수들이 앞으로 튼튼한 국가대표 선수로 자리 잡고, 박건우(두산) 김세현(넥센) 구자욱(삼성) 등 새로운 리그의 간판스타들이 더 많이 대표팀에 발탁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한명이라도 더 대형 스타를 많이 만들어야 2020년 올림픽 때 우리가 야구의 2차 붐업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구상하는 모든 대표팀 엔트리는 ‘2020년을 향한 이상이 담겨 있느냐’가 중요한 키워드일 것입니다. <②편에 계속>

[정리=이승민 기자 chicleo@maekyung.com]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권 문제 시 연락주시면 삭제하겠습니다.

뉴스목록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