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연이 전하는 야구의 모든것

“프로는 팬이 王… 취임뒤 한달간 1만5000㎞ 야구현장 뛰어다녀” - 문화일보 (2022.4.29)

허프라 ㅣ 2022.04.29 16:43

KBO의 허구연 총재가 지난 21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2022 신한은행 쏠(SOL) KBO리그 공인구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김선규 기자

■ M 인터뷰 - ‘프로야구 40년’ 산증인 허구연 KBO 총재

성적부진·선수일탈·코로나

야구장 찾는 관중 크게 줄어

바쁘더라도 사인 다 해주는

MLB‘팬 퍼스트’꼭 배워야

‘쇼츠·움짤’중계권문제 해결

MZ세대 팬들 찾아오게 해야

대전신구장·잠실돔구장 등

현안 잘 진행되도록 도울 것

한평생 야구계서 받은 혜택

되돌려준다는 생각으로 봉사


허구연(71)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다. 허 총재는 지난 3월 25일 만장일치 서면 결의로 24대 KBO 총재로 선출됐다. 경남 진주 출신인 허 총재는 2루수였으며 경남고와 고려대, 실업팀 상업은행, 한일은행 등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그는 야구인 최초로 KBO 수장에 올랐다.

허 총재는 한국프로야구 40년 역사의 산증인이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MBC에서 야구 해설가로 이름을 알렸고, 1986년엔 역대 최연소(35세)로 청보 구단의 감독을 맡았다. 1989년 롯데 코치를 끝으로 현장을 떠났다가 1991년 다시 마이크를 잡고 30년 넘게 야구 현장을 부지런히 누볐다. 허 총재는 타고난 입담으로 프로야구의 최고 해설가로 꼽혔다. 야구해설위원 허구연을 모르는 야구 팬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허 총재는 별명 부자. ‘허구라’ ‘허프라’(허구연+인프라) 등 해설위원 시절 얻은 별명도 많다. 아울러 ‘돼쓰요’(됐어요), ‘베나구’(변화구) 등 특유의 구수한 어록도 남겼다.

허 총재는 한국프로야구의 수장으로 변신, 새로운 도전을 펼치고 있다. 특히 지난달 29일 공식 취임한 이후 전국을 누비고 있다. 지난 2일엔 2022 신한은행 쏠(SOL) KBO리그 개막전이 열린 창원NC파크를 찾았고, 5일엔 수원케이티위즈파크, 9일엔 인천SSG랜더스필드, 10일엔 대전한화생명이글스파크, 27일엔 부산사직구장을 찾았다.

물론 KBO 총재가 야구장을 찾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런데 허 총재는 단순히 야구장을 방문하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야구장에서 구단주, 연고 도시 시장과 야구계 현안 등을 이야기했고, 지방 야구장을 찾은 다음 날엔 인근 지역의 지방자치단체장을 만나 야구 인프라 확충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이달 3일 조규일 진주시장과 ‘진주 야구스포츠파크’ 건립을, 24일엔 잠실구장에서 오세훈 서울시장과 잠실돔구장 건설을 논의한 것이 대표적이다. 28일엔 오규석 기장군수를 만나 한국야구 명예의전당 사업부지를 둘러봤다.

21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만난 허 총재는 “지금 눈에 들어오는 일이 너무 많다. 총재는 리그의 가치를 높이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몇몇 구단주와 지자체장들을 만났고, 대한체육회와 문화체육관광부도 직접 방문했다. 2009년부터 KBO 야구발전위원장을 수년간 맡은 것이 대외 업무에 도움이 됐다. 아직 만나야 할 사람과 할 얘기도 많다. 40년 넘게 야구 현장을 지켰고, 총재가 된 지금도 답은 현장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허 총재는 원래 부지런했다. 해설위원 시절엔 최소 3시간 전에 경기장을 찾았다. 마이크를 잡기 전 항상 그라운드에서 훈련 중인 선수들을 만나 취재했고, 자신이 취재한 생생한 뒷이야기를 전달했다. 총재가 된 이후에도 이 부지런함은 그대로다. 취임 후 한 달간 이동한 거리는 벌써 1만5000㎞를 넘었다. 서울과 부산 간 왕복 거리(약 800㎞)를 19회가량 이동한 긴 거리다. 허 총재는 직접 현장을 찾기 어려울 때면 전화를 이용한다. 장거리 이동이 많은 그는 최근 이동 수단을 고급 세단에서 승합차로 바꿨다. 이동하면서 좀 더 편하게 전화 통화를 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허 총재는 인터뷰에서 ‘위기’라는 말을 10번 이상 했다. 프로야구는 자타 공인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 그런데 최근 수상한 조짐을 보인다. 지난달 23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프로야구에 관심이 있다’고 답한 이가 전체의 31%에 그쳤다. 이는 2013년(44%)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20대 젊은 층의 관심 역시 2013년 44%에서 2022년 18%로 떨어졌다. 26일까지 전체 103경기를 치렀지만 ‘만원 관중’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허 총재는 “3월 말 취임식에서도 말했지만, 지금 9회 말 1사 만루에서 마운드에 선 투수의 심정이다. 국제대회에서 성적이 떨어졌고, 선수들의 일탈 행위가 자주 발생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2년간 관중이 거의 없었다. 그간 우리 야구는 미래에 대한 투자에 소극적이었고,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엮여 현재 위기를 만들어 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허 총재는 “올해 이대호가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양현종·김광현이 메이저리그를 경험하고 돌아왔다”고 소개하면서 “김도영, 송찬의, 문동주 등 좋은 신인이 많아 기대되는 한 해다. 또 메이저리그 출신의 야시엘 푸이그가 온 것도 호재라고 생각한다.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허 총재는 취임 후 ‘팬 퍼스트’를 강조하고 있다. 허 총재는 “선수들이 좀 더 팬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지금은 쌍방향 소통 시대다. 특히 프로스포츠는 팬이 왕이다. 메이저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코치를 맡았을 때의 일이다. 켈리 그루버라는 3루수가 시범경기를 마치고 아내와 나가려다가 팬들에게 사인 요청을 받았다. 그루버는 아내에게 한 시간만 기다려 달라고 한 뒤 팬들에게 모두 사인해 주고 가더라. 아직도 그 장면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면서 “최근 메이저리그에서 돌아온 김광현이 경기장 익사이팅존에서 팬들에게 사인해 주는 모습을 봤다. 미국에서 ‘정말 야구를 사랑하고, 관중 한 명이라도 더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낀 것 같다. 이렇게 선수들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허 총재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잡기에 심혈을 기울일 예정. MZ세대에겐 프로야구가 점점 올드한 스포츠 이미지로 굳어지고 있다. 허 총재는 “요즘 놀거리가 훨씬 다양해졌다. 결국, 관건은 MZ세대가 다시 야구장을 찾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젊은 세대는 유튜브 쇼츠, 움짤(움직이는 그림 파일)에 익숙하다. 젊은 팬들이 3시간 동안 야구를 보겠나. 그런데 중계권 문제로 쇼츠, 움짤을 사용할 수도 없다. 이런 것들을 풀어놓지 않고 팬을 확보하겠다는 게 말이 되나. 내가 나서서 MZ세대가 참여하는 위원회를 구성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MZ세대가 좋아하는 분야 종사자들과 만날 계획이다. 상대를 알아야 더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허 총재의 임기는 정지택 전 총재의 잔여 임기인 내년 말까지다. 그는 한번 결단하면 소신을 굽히지 않고, 뚝심 있게 밀어붙인다. 선수의 장단점을 파악하는 정확한 혜안을 지녔기에 해설위원 시절 그의 판단은 늘 적중했다. 허 총재는 “KBO 마스터플랜을 만들어야 한다. 5년, 10년 단위의 계획을 세울 것이다. 대전신구장과 잠실돔구장 등 현안이 잘 진행되도록 돕겠다. 2군 선수들이 전지훈련 장소로 사용할 수 있도록 남해안 벨트 조성에도 힘쓸 것이다. 지방선거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움직이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그러면서 허 총재는 “한평생 야구계에 종사하면서 많은 혜택을 받았고, 야구계에는 젊고 유능한 인사들이 많다. 그간 쌓은 다양한 인맥을 활용해 총재로 재임하는 동안 야구를 위해 봉사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기사제공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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