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연이 전하는 야구의 모든것

야구계, 전문가 의견에 귀를 기울여라 (12. 8.27 - 10화)

허프라 ㅣ 2012.08.29 09:30

“원정경기에 와서 이렇게 넓은 라커룸을 사용할 수 있다니 정말 좋습니다.”

“시설이 선수 위주로 돼 있어 참 좋습니다. 포항에서 경기를 자주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난 14일 개장한 포항야구장에서 만난 한화·삼성 선수들의 반응이었다. 당연히 갖춰져 있어야 할 환경에 고마워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공무원들의 자세와 인식변화, 발상전환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느꼈다.

왜 우리 선수들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에 대해 감사함을 느껴야 할까. 다른 구장의 시설이 기능과 편의를 무시함은 물론이고, 관중들의 안락한 관전을 아예 고려하지 않았기에 나온 반응으로 본다. 이번 기회에 체육시설 문제를 다시 한 번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신축된 포항야구장에 대한 호평 속엔 숨은 공로자와 뒷이야기가 있다. 포항구장 탄생은 경북야구협회의 정성과 눈물어린 노력의 결과다. 야구 불모지나 다름없는 포항에서 10년 동안 끈질긴 집념을 통해 국비, 시비 등으로 야구장을 건립하기까지의 과정을 알고 있는 필자는 그들의 노고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경북야구협회 임원진 대다수가 프로야구나 실업야구선수 출신이 아니라 야구를 좋아하고 사랑한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들은 십시일반(十匙一飯) 사비를 털어 협회를 운영하면서 야구장 건립을 유도했다. 감투싸움에 시간을 허비하면서 발전을 저해하고 개별이익에 몰두하고 있는 일부 지역과 비교하면 '감동적'이라 할 만한 야구사랑이었다.
 
좋은 야구장 탄생 뒤에는 포항시 관계자들의 열린 자세도 큰 몫을 차지했다. 필자는 많은 지자체를 접촉해봤지만 포항시처럼 잘못을 깨끗이 시인하고 공모로 당선된 설계를 취소한 후 재공모 절차를 거쳐 좋은 야구장 건설의 초석을 다진 곳은 처음이었다.

관중 위주의 친환경적 설계와 함께 야구장 의자도 투수 마운드쪽으로 향하고 있어 팬들이 오랜 시간 동안 관전해도 피로감을 덜 수 있는 데에는 시 담당자들이 권한의 남용을 과감히 버린 결과가 아닐까. 2만5000석까지 증축이 가능하도록 설계한 점 역시 체육예산을 낭비하거나 비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다른 지자체들이 참고해야 할 사항이다. 순환보직이 많아 전문성이 취약한 공무원들 대신 야구장 건립 경험이 없는 설계업자, 건축업자들 위주로 야구장을 건립, 리모델링한 경우의 문제점은 이미 현실로 드러나 있다.

포항야구장의 예에서 보듯 체육 시설도 이제는 전문성이 동반된 가운데 효율적인 예산집행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돔구장이 없어 내년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예선 유치 신청조차 못한 채 대만 또는 일본에서 예선전을 치러야 한다. 서울시가 구상중인 잠실구장 리모델링, 개방형 신축 야구장 건립에 대한 검토도 돔구장 건립안까지 포함시켜 장기적 안목에서 진지한 접근이 있어야 할 것이다. 체육, 문화, 예술의 특성상 그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아 실패한 경험을 더 이상 지자체와 정부가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일간스포츠에 연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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