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연이 전하는 야구의 모든것

[허구연 야구론] 열정과 전문성을 겸비한 CEO의 필요성 (13. 6. 11 - 24화)

허프라 ㅣ 2013.06.13 10:33



미국 메이저리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는 거액을 쏟아부은 LA 다저스를 제치고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1위를 달리고 있다. 구단 사장 데릭 홀(44)은 1992년 다저스에서 인턴부터 시작해 12시즌을 보낸 후 2005년 애리조나로 옮겨 현재는 사장(President & CEO)을 맡고 있다. 단장 케빈 타워스(52)는 16년 단장 경력의 소유자로 메이저리그 현역 단장 중 4번째 고참이다. 구단 규모에 비해 운영을 잘하는 이유 중 하나는 사장·단장의 능력과 활약이다.

올해 국내 프로야구에서도 막내구단의 반란이 무섭다. 전체 일정의 40%를 소화한 현재 후발주자인 넥센과 NC의 돌풍과 반격이 예사롭지 않다. 넥센은 2년 연속 우승을 한 삼성과 선두 다툼을 펼치고 있고, 막내 NC는 개막 초의 부진을 씻고 탈꼴찌 가능성을 보여줘 신선하게 느껴진다. 아직 잔여 일정이 많이 남아 있어 향배를 점칠 수 없지만 만약 넥센이 끝까지 선두권을 유지하거나 NC가 탈꼴찌에 성공한다면 야구계에 주는 메시지는 제법 클 것으로 예상된다.

두 팀의 선전 속엔 나머지 7개 구단과는 다른 구단 운영과 컬러가 있다. 모기업이 없는 넥센과 성공한 벤처기업인 NC는 기업 규모와 인원, 자금력 등에서 기존 7개 구단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넥센과 NC은 프런트의 신속한 의사결정 속에 효율적으로 팀을 운영하고 있다. 기존 구단의 운영이 모기업의 의중을 살필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감안하면 두 구단의 슬림화된 구조는 큰 장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NC의 김택진 구단주가 가끔 문자 메시지로 감독과 선수들을 격려하고 소통하는 것이 좋은 예이다. 기존 구단들의 문제점 중 하나로 꼽히는, 선수단과의 소통을 단절시키는 임원들의 잦은 교체와 비교된다.
 
그동안 관행화된 성적 부진에 따른 구단 수뇌부 문책은 책임 경영에 대한 권한 부여가 우선돼야 한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성적이 부진한 팀일수록 프런트 책임자들이 전문성을 갖추기도 전에 문책을 당하거나 교체되는 관행이 되풀이되고 있다.

필자의 경험으론 그룹의 주력 회사를 거친 후 야구단에 부임하는 사장과 단장의 경우엔 적어도 4~5년 정도의 경험이 쌓여야 그나마 직관력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전문성이 발휘될 수 있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전문성'을 겸비한 인물의 '열정적'인 구단 운영이다. 전문성이 부족한 가운데 열정만으로 단기성과에 급급해 역효과를 낸 사례도 많이 봤다.

올해 봄 미국 애리조나에서 오랜만에 만난 데릭 홀 사장이 필자에게 준 명함 뒷면엔 “이 명함을 가져온 분에겐 입장권 2장을 드리세요”란 글이 새겨져 있었다. 야구 관계자들에게 받아본 명함 중 가장 인상 깊었다. 우리와 역사, 규모가 달라 비교하기 조심스럽지만 열정과 전문성 속에 현장을 중요시하는 냄새가 물신 풍겼다. 우리도 그런 CEO가 많이 나올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었으면 좋겠다.
 
<일간스포츠에 연재된 칼럼입니다>

뉴스목록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