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연이 전하는 야구의 모든것

[인터뷰]허구연, 한국의 빈 스컬리를 꿈꾸다 - OSEN (13.12.21)

허프라 ㅣ 2013.12.23 14:47

[OSEN=이대호 기자] “여전히 내 목표는 해설하다가 은퇴하는 거죠. 더 좋은 해설을 위해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한데 너무 바빠서 그게 아쉬울 뿐입니다.”

허구연(62) MBC 해설위원은 시즌 중에는 야구만 생각하며 산다. 아침에 눈을 떠 메이저리그 경기를 챙기고, 만약 중계방송 일정이 잡히지 않았다면 오후 6시 일본야구, 오후 6시 30분 우리 프로야구에 채널을 고정한다. 그렇게 경기를 복기하고, 기록을 정리하다 보면 자정을 넘기는 건 예사다.

그러한 노력이 있기에 허 위원이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해설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해설자로서 약점이라고 볼 수도 있는 사투리 억양이 여전히 남아 있는 허 위원이지만, 그의 목소리와 함께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의 기쁨을 만끽했던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매력으로 다가오기까지 한다.


 
허 위원의 어록 중 ‘식샤’라는 말이 있다. 식사라는 단어에 경상도 사투리 억양이 더해져 만들어 진 단어다. 허 위원은 해설 도중 야구인들과 사적인 만남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자주 소개하는데, 그 때마다 꺼내는 말이 ‘식샤’다. 이 말이 오죽 유명했으면 최근 시작한 한 케이블채널 드라마에서도 ‘식샤’를 그대로 따와 드라마 제목을 지었을 정도다.
허 위원과의 인터뷰에 앞서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기 위해 ‘식샤’ 이야기를 꺼냈다. 허 위원은 “나는 ‘식샤’라고 발음 안 하는 거 같은데 이상하다”고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드라마 제목으로 ‘식샤’라는 말이 쓰인다는 걸 들어서 알고 있다. PD가 제목을 정하기 전 내게 양해를 구하지는 않았지만, 카메오로 출연해야 하나 고민”이라고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시즌 초가 되면 방송해설의 세계에도 바람이 분다. 일부 해설위원은 마이크를 놓고 떠나고, 또 다른 이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그렇지만 허 위원만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허 위원도 해설자 일을 시작했고, 현장으로 뛰어든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공백기를 가진 뒤 1992년 다시 마이크를 잡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허 위원의 해설을 듣다보면 깊은 지식에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국내 프로야구도 그렇지만, 메이저리그에 대해서도 상당히 많은 정보를 갖고 시청자들에게 전달해준다. 예를 들어 전 신시내티 감독인 더스티 베이커의 이야기가 나오면, 단순히 현역시절 활약만을 전해주는 게 아니라 숨겨진 뒷이야기나 정보까지 전달해준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허 위원은 노력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사무실에 오전 8시 반쯤 출근하면 곧바로 메이저리그를 켠다. 예전에는 중계방송이 없어서 문자중계로 모두 봤다. 내가 그 구단, 그 선수를 맡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중계를 챙겼다. 그래야만 그 팀을 추적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후 6시에는 일본야구, 6시 반이면 우리야구를 본다. 모니터가 3개인데 하나는 일본야구를 틀고, 나머지 2개는 우리야구를 챙긴다”고 일과를 소개했다. 말 그대로 시즌 때면 야구에 파묻혀 살고 있다.

철저한 준비로 시청자들을 만나는 허 위원은 가장 아쉬운 게 가까운 사람들을 챙기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친구들이 만나자고 해도 낼 시간이 없다. 늦게까지 야구보고, 또 다음 날 아침이면 야구를 챙겨야 한다. 해설에 최우선을 두고 삶을 산다. 친구들이 이해해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며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여전히 정력적으로 활동하는 허 위원은 건강을 최우선으로 챙기지 않을 수 없다. 해설만 하는 게 아니라 허 위원은 한국야구위원회 산하 야구발전실행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때문에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다. 건강관리 비법을 묻자 그는 “술은 일단 자제한다. 사실 술 마실 시간도 별로 없다”면서 “그냥 틈만 나면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허 위원을 ‘인프라’로 많이 기억하지만, 정작 본인은 “난 천상 해설자”라고 말한다. 허 위원은 “어서 야구발전실행위원회 일을 마치고 해설에만 전념하면 소원이 없겠다. 그러면 더 좋은 내용의 해설로 시청자들을 찾아뵐 수 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렇다면 허 위원이 생각하는 은퇴는 언제쯤일까. 그는 “아직 은퇴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이제는 그만해야겠다 싶을 때 마이크를 놔야할 것 같다”고 말한다. 그가 계속해서 해설을 하는 이유는 현재 한국 프로야구 미디어환경에 원인이 있다. 허 위원은 “너무 빨리 해설에서 조기은퇴를 하는 경향이 있다. 야구중계는 스토리와 히스토리, 레코드(기록), 애널리스트(분석)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히스토리가 없다”고 꼬집었다.

허 위원이 꺼낸 사례는 최동원과 선동렬의 맞대결이다. 1987년 5월 16일, 대한민국 최고 투수의 맞대결은 연장 15회까지 이어졌고 선동렬이 232구, 최동원이 209구를 던진 가운데 경기는 2-2 무승부로 끝났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맞대결이었던 이날 경기는 2년 전 영화 ‘퍼펙트 게임’으로 재현되기도 했다.

당시 사건을 두고 몇몇 방송사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그런데 영상에 출연한 전문가가 너무 젊다는 게 문제였다. 허 위원은 “과연 그들의 말에 얼마나 신뢰도가 있는지 알 길이 없다. 그 일을 취재하려면 반드시 만나야 할 사람은 해태와 롯데의 투수코치와 감독이다. 난 당시 롯데 코치로 더그아웃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그리고 그 경기를 해설한 아나운서와 해설자, 직접 취재한 기자의 말도 들어야 한다. 그런데 정작 방송에는 그런 장면이 전혀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당시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이 야구계를 떠났기 때문에 섭외가 쉽지 않았던 게 가장 큰 이유다.

허 위원은 “야구만큼은 백발이 희끗한 기자나 아나운서, 해설자가 있어야 한다. ‘혼자 다 해먹으려고 하는 소리가 아니냐’라는 말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미국에 빈 스컬리(86.LA 다저스 전속해설가)를 보면 정말 대단하다. 그는 류현진이 던지는 걸 보고 ‘발렌수엘라가 던지는 것 같다’고 말할 자격이 있다. 실제로 두 선수를 모두 봤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 발렌수엘라를 못 본 사람도 기록은 이야기할 수 있지만, 스컬리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 있다. 스컬리는 샌디 쿠팩스와 류현진을 비교할 자격이 되는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허 위원의 목표는 해설을 하다가 은퇴하는 것이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허 위원에게 ‘빈 스컬리처럼 계속해서 해설을 하는 게 목표’나고 물었더니 “말하자면 스컬리처럼 하고 싶은 게 진짜 마음 아니겠냐”는 답이 돌아왔다. 허구연, 그는 자신의 말대로 천상 해설자다.

cleanupp@osen.co.kr
 
 
저작권 문제 시 연락주시면 삭제하겠습니다.

뉴스목록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