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연이 전하는 야구의 모든것

[인터뷰] 허구연 "우리도 '제2의 무시나' 나오길 꿈꾼다" - OSEN(13.12.21)

허프라 ㅣ 2013.12.23 14:54

 
[OSEN=이대호 기자] 허구연(62) 한국야구위원회(KBO) 야구발전실행위원장은 겨울에도 쉴 틈이 없다. 야구인들이 가장 한가한 12월이지만, 그의 수첩은 여전히 일정들로 빼곡하다.

얼마 전 허 위원은 캄보디아를 다시 찾았다. 허 위원은 자신의 이름을 딴 '허구연 야구장'이 있는 캄보디아를 매년 방문해 야구용품을 기증하고 있다. 이번에는 혼자 다녀온 게 아니라 양산 원동중학교 학생 15명과 함께였다. 그리고 올해가 가기 전 베트남도 찾을 예정이다. 모두 야구 불모지에 씨앗을 뿌리기 위해서다.

야구가 끝나도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허 위원을 OSEN이 만났다. '인프라' 한 단어로 정리되는 허 위원의 열정은 한국야구를 얼마나 바꾸어 놓았을까. 그리고 그가 꿈꾸는 한국야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 "야구계, 성공에 안주할 때가 아니다"
 
한국야구 발전을 위해 달려온 허 위원의 눈에 '프로야구 르네상스'는 어떻게 보일까. 현재 프로야구는 대한민국 최고 인기를 누리는 프로스포츠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 그렇지만 허 위원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직 성공에 안주할 때가 아니다"라는 말을 거듭해서 강조한다.

허 위원은 관중 600만 명 돌파, 10구단 창단 등 야구판의 규모는 커지고 있지만 내실을 다지지 않으면 사상누각처럼 지금의 인기가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야구인기가 작년과 올해 정도가 정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최대한 많이 해 놔야한다. 그런데 지금은 다들 수확할 생각만 하고 씨를 뿌릴 생각은 안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특히 허 위원이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은 행정능력이다. 그는 "우리 야구계가 우물 안 개구리다. 모두들 KBO만 바라보고 있는 실정인데 사실 국가경비 가운데 찾아서 쓸 수 있는게 적지 않다. 이번에 교육부에 가서 원동중학교를 위해 2000만원의 지원금을 받았는데 공무원들이 '야구에서 오는 건 처음'이라고 놀라더라"고 한탄했다.

지금이 야구의 전성기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할 일이 여전히 너무나 많이 남아 있다는 허 위원. 그는 "야구가 타 종목의 부러움을 넘어 시기와 질투의 대상까지 되고 있는 현실이다. 야구가 이제 올림픽 종목도 아닌데다가 국가의 정책적 지원도 못 받고 있다. 최소 고교팀이 100개는 되어야 하고 하루라도 빨리 저변확대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구가 지금보다 더욱 탄탄하게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행정력을 갖춘 야구인이 각계각층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허 위원의 생각이다. 그는 "만약 야구인이 정계에 진출한다면 여당, 야당에 한 명씩 다 가야한다. 한 쪽에만 가게 된다면 상대 당에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할 수가 있다. 그러면 오히려 잃는 게 더 많다. 예를 들어 새누리당에 한 명이 간다면, 다른 사람은 정의당에도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허 위원은 9구단 창단 당시의 일화를 소개했다. 유영구 전 KBO 총재와 함께 9구단의 산파역할을 했던 허 위원은 "9구단 창단 확답을 받고 창원시청을 나오면서 내가 가장 먼저 전화를 건 사람은 권영길 의원이었다. '창원시가 야구를 하게 됐는데 반대하지 말아 주시고 도와주십시오. 야구하는 거 잘했다고 칭찬도 좀 해주십시오'라고 말했었다. 야구 발전을 위해서는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 "똑똑한 무시나가 정말 부럽다"

허 위원은 이미 여러 차례 '운동선수도 공부를 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고교야구 선수들 가운데 프로에 진출하는 건 10%가 채 못 되는 현실에서 나머지 90% 학생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한 사람 몫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한국 학생야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2011년부터 고교야구가 주말리그로 운영되면서 평일에는 학생들을 교실로 돌려보내려 하고 있지만, 시설미비로 쉽지만은 않은 현실이다. 낮에 수업을 듣게 된다면 훈련은 야간에 할 수밖에 없는데, 조명시설을 갖추고 있는 고교 팀은 많지 않다.

때문에 허 위원은 "과거 선수들은 실업팀이 있어서 선수로도 뛰고, 은퇴하면 자동으로 취직도 돼 취업해결이 됐는데 지금은 정말 큰일이다. 학부모들이 야구를 안 시키려고 한다"며 "정작 불쌍한 건 학생들이다. 부모나 코치가 '야구만 하라'고 해서 열심히 했는데 정작 사회에 나오면 할 일이 없다"고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허 위원이 '공부하는 운동선수'를 기다리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가까이는 구단 프런트, 그리고 넓게 본다면 정계까지 야구인 출신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허 위원의 생각이다. 아직까지 구단 운영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단장 자리는 비야구인 출신이 득세하고 있다. 야구인 출신 단장은 SK 민경삼 단장, 그리고 두산 김태룡 단장 뿐이다.

허 위원은 "지금 '단장야구'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진정한 단장야구는 요원하다"면서 "사실 단장은 야구인 출신이 더 많이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야구인들의 능력이 아직 안 되는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야구인 출신은 행정능력이 떨어지는데 회의 주재나 보고서 작성, 대인관계 등 모든 게 필요한 자리가 바로 단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허 위원이 예로 든 인물이 바로 마이크 무시나다. 볼티모어와 양키스에서 활약한 무시나는 통산 270승 153패 평균자책점 3.68을 기록한 대투수로 뛰어난 활약에도 불구하고 우승이 단 한 번도 없어 '무관의 제왕으로도 불린다.

무시나는 뛰어난 야구실력만큼이나 명석한 두뇌를 자랑했다. 바로 스탠퍼드 대학교 경제학부에 자신의 실력으로 들어간 것. 게다가 그는 대학생활을 하며 줄곧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성적이 좋았고, 3년 반 만에 조기졸업까지 했다.

허 위원은 '뛰어난 별종' 무시나를 부러워한게 아니라 무시나를 키워낼 수 있는 미국의 환경과 시스템을 부러워했다. 그는 "무시나와 같은 선수가 나올 수 있는 미국의 환경이 너무 부럽다. 아침에 연습하고 낮에는 수업듣고, 저녁에 다시 훈련을 할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져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며 "스탠포드 대학 감독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새미 소사 10명을 준다고 하더라도 난 무시나랑 안 바꾼다'라고 말하더라. 그렇게 공부를 하고 한 해 20승을 하는 무시나가 정말 대단한 것"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 "9구단 창단과 대구·광주구장 가장 보람돼"

허 위원이 야구발전실행위원장을 맡은 지 올해로 5년 째다. 그 사이 한국 프로야구는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 과연 허 위원은 어떤 일이 가장 기억에 남을까.

그는 곧바로 "9구단과 10구단 창단과 독립구단이 아닌가 싶다. 후배들을 위해 그래도 뭔가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답했다. 이어 "대구구장과 광주구장이 바뀌는 것도 그렇다. 내가 마이크 놓기 전까지 고쳐질까 싶었는데 이제 내년이면 새로운 광주구장이 열린다"며 활짝 웃었다.

허 위원은 "당시 유영구 총재에게 '새 구단을 만들자'는 제의를 했었다. 물론 기존구단의 반대는 말도 못하게 심했다. 그래서 정말 비밀스럽게 추진했던 기억이 있다"면서 "단순히 구단을 늘리는 의미도 있지만, 당시에는 히어로즈 문제도 있었다. 지금은 히어로즈가 완전히 자리 잡았지만, 그 때는 8개 구단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9구단이 필요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우여곡절 끝에 NC 소프트와 창원시의 결합으로 프로야구 9구단이 탄생했지만 허 위원은 불안한 마음으로 이들을 지켜봤다고 한다. 그는 "올해 NC가 처음 1군에 들어왔는데 시즌 초 막 질때는 정말 답답하더라. 시기상조라는 말이 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 '큰일났다' 싶었는데 다행히 좋은 성적으로 시즌을 마칠 수 있었다"고 했다.

허 위원이 9구단, 10구단 창단만큼이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건 바로 독립구단인 고양 원더스의 창단이다. 고양 원더스의 탄생 덕분에 수많은 선수들이 프로진입의 꿈을 키우면서 야구를 계속할 수 있게 됐다. 허 위원이 고양 원더스 구단주인 허민 대표에게 창단을 제의한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허 위원은 "허민 구단주가 3년 동안 120억 원이나 썼다. 이제는 프로야구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독립구단을 품어야 하는데 그게 안타까웠다. 그래도 경기도가 독립리그 창설을 준비하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또한 허 위원이 야구발전실행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는 시기에 광주구장과 대구구장, 울산구장, 포항구장의 신축이 결정됐다. 그는 "각 구장에서 구장에 대한 자문을 구해와 정말 바쁘다. 정말 보람된 일이지만 실제로 시간도 많이 빼앗기고 있다"며 다시 수첩을 펴보였다.

현재 새로 짓고 있는 광주와 울산구장, 그리고 작년 개장한 포항구장은 특색 있는 구장이다. 포항구장은 국내 최초로 포수 백네트 바로 뒷좌석을 개방했고 외야에는 의자 대신 잔디를 깔았다. 덕분에 포항구장은 야구팬들의 많은 찬사를 받고 있다.

허 위원은 "야구장은 승부만 겨루는 게 아니라 와서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면서 "울산구장은 국내 최초로 백스크린을 나무 조형으로 꾸몄다. 거기에 울산을 상징하는 것들을 넣게 된다. 또 워닝트랙에는 최초로 화산석을 깔기로 했다. 처음에 워닝트랙을 그냥 빨간 인조잔디로 깔려고 하더라. 선수가 느낄 수 있어야 워닝트랙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또한 허 위원은 조명에도 각별히 신경을 썼다. "지금은 조명탑에 타구가 들어가는 게 승부를 가르기도 한다. 그래서는 안 된다 싶어서 플라즈마 자연광으로 조명탑을 설치하도록 요청했다"는 것이 허 위원의 설명이다.




▲ 허구연이 발로 뛰는 까닭

허 위원은 2014년 야구발전실행위원회 우선과제로 티볼(Tee ball)의 보급을 꼽았다. 티볼은 배팅 티에 볼을 올려놓고 정지되어 있는 공을 치는 구기 종목으로 야구와 유사하다. 투수가 없다는 점만 뺀다면 야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공은 부드러운 연식구를 사용하고, 부상방지를 위해 도루나 슬라이딩은 금지되어 있다. 티볼은 2008년부터 초등학교 5학년, 그리고 중학교 2학년 정규과정으로 편성돼 있다.

그렇지만 티볼을 실제로 즐기는 학교는 많지 않다. 야구만큼은 아니지만 장비를 갖추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허 위원은 티볼 보급에 야구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확신으로 보급에 주력하고 있다.

허 위원은 "현재 한국사회 엘리트들 가운데 상당수는 야구를 좋아한다. 박재완 전 청와대 수석은 프로야구 하이라이트를 모두 챙겨볼 정도로 광이었다. 그 뿌리는 과거 명문고가 모두 야구를 한 덕분"이라면서 "그렇지만 이제는 평준화로 그런 의미가 없어졌다. 특목고 출신이 한국의 중추를 차지한다면 더 이상 야구에 관심이 없어질지도 모른다"고 위기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래서 허 위원은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티볼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특목고에 연식야구나 티볼을 보급해야 한다. 전문적으로 야구하는 학교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학교가 더 많다. 반드시 야구를 한다고 해서 프로를 목표로 할 필요까지 없다. 티볼을 접한 학생들이 나중에 장관이 되고 한다면 나중에 야구발전에 조금이라도 더 도움을 주지 않겠냐"고 말했다.

얼마 전 허 위원은 강원도 평창군을 찾았다가 우연히 평창초등학교에 들어갔다고 한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학교를 한동안 바라보다 교무실을 무작정 방문한 허 위원은 티볼 용품을 지원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학생들이 그 아름다운 곳에서 뛰어놀면 얼마나 좋은가. 그냥 야구를 좋아하게 돼도 좋지만, 그 중에서 야구를 하는 중학교에 진학할 학생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다보면 나중에 정수빈같은 선수도 얼마든지 나오지 않겠냐"며 미소지었다.

이처럼 허 위원은 야구가 없는 겨울에 더 바쁘다. 전국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그리고 새 야구장 건설에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으면 직접 찾아가는 것이 일상이다. 지방으로 내려가는 건 다른 사람이 해도 될 일이지만 허 위원은 꼭 자신이 챙기려고 한다.

"내가 말로만 하면 사람들은 의구심을 품는다. 그래서 직접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거의 모든 시간을 야구에 쏟을 수밖에 없다. 발로 뛰는 수밖에 없지 않나."

cleanupp@osen.co.kr

<사진> 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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