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연이 전하는 야구의 모든것

'해설인생 30년째' 허구연 ”빈 스컬리 거리요? 아이고~ 제 꿈은요~” - 일간스포츠 (2016.03.07)

허프라 ㅣ 2016.03.09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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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右 허구연위원. 사진출처= 허구연 해설위원 SNS ]


"LA에 빈 스컬리 거리가 생겼다더군요. '허구연 거리'도 언젠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요?"

"허구연 거리요? 아이고. 저와 빈 스컬리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허구연(65) MBC 해설위원이 크게 웃었다. 52일간의 일정으로 미국에서 '코리안 빅리거'들을 살피고 있다는 그는 "거리보다는 어린 꼬마들이 뛰어놀 수 있는 야구장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허 위원은 1982년 MBC에서 프로야구 해설자의 인생을 처음 시작했다. 1986년 청보핀토스 감독과 롯데 코치를 거치며 잠시 그라운드에 머물렀지만, 1991년부터 다시 마이크 앞으로 돌아왔다.

요즘 세상에 어느 한 분야에서만 수 십 년 동안 일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날마다 새로운 인물이 나오고 스러져 가는 곳이 방송이다. 30년 가까이 한 길만 걸어가기 힘들듯 싶었다.

지난 6일 일간스포츠와 전화 연결이 닿은 허 위원은

"지도자 생활을 빼고나면 해설위원만 29년 동안 했네요. 이제 30년 째를 맞이합니다. 힘드냐고요? 스포츠와 야구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정말 많습니다. 힘들고 지치기보다는 즐겁고 재밌어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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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빅리거' 전성시대…"사명감 느낍니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는 박병호(30·미네소타), 김현수(28·볼티모어), 오승환(34·세인트루이스), 강정호(29·피츠버그), 추신수(34·텍사스), 류현진(29·LA다저스), 이대호(34·시애틀)까지 무려 7명의 선수가 뛴다.

허 위원은 KBO 외에도 '빅리그' 중계도 맡고 있다. 비시즌에도 만나야 할 선수와 구단 관계자가 많다. 그가 지난달 초 미국으로 건너가 한 달 반 동안 머무르는 이유다.

"카메라를 앞에 두고 인터뷰하는 것만으로는 속 깊은 이야기를 충분히 듣기 힘듭니다. 방송 일정과는 별도로 30일 정도 개인 출장 시간을 마련했어요.

어제는 폴 몰리터 미네소타 감독을 만나서 박병호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나눴습니다. 선수 말고도 구단 관계자나 스카우트를 통해 듣는 이야기도 상당히 중요합니다."

허 위원은 1990년 캐나다 토론토 산하 마이너 리그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다.

"1984년 무렵 미국 메이저리그에 4주가량 머물렀고, 이후 지도자 생활도 했지요. 당시 미국 야구 환경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야구 시설은 물론이고 이론과 기술적으로도 지나치게 낮은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구덕구장 같은 곳에서 프로 경기를 할 때였어요. 당시 현장에 있던 미국 기자들이 'KBO가 있는가. 정말 한국이 프로야구를 하느냐'며 놀랐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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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左 허구연 해설위원과 그 옆에 박찬호 (당시 LA 다저스) 선수의 모습이 보인다 ]





야구 불모지였던 한국은 '코리안 특급' 박찬호를 시작으로 추신수, 류현진 같은 '빅리거'를 배출했다. 지난해 강정호를 시작으로 KBO 야수도 미국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우리나라 야구의 격이 높아졌다는 방증입니다. 과거에는 우리나라 해설자들이 방문하면 큰 관심을 갖지 않았죠. 올해는 각 구단마다 성심껏 대해주더군요. 우리 선수들이 다들 팀 내 비중이 상당히 큽니다. 그만큼 해설자로서 사명감을 느끼고 있어요. 올해를 이 선수들이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KBO의 위상이 더 달라질 것입니다."


◇삼성의 제일기획 이관…"예사로 봐선 안 돼"


삼성 야구단의 모기업은 지난해 12월 제일기획으로 공식 이관됐다. 제일기획은 2014년부터 삼성 그룹의 주요 스포츠단을 차례로 인수해왔다. 허 위원은 삼성의 제일기획 이관을 야구계 불어올 구조 변화의 신호탄으로 보고 있었다.

"삼성 야구단의 행보를 예사롭게 봐선 안 됩니다. 결국 스포츠단에도 자생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겁니다. 매년 적자를 내는 스포츠단에 언제까지 모기업에서 한 해 200~300억씩 투입할 수 없다는 거죠. 체육계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삼성이 시작하면 다른 기업도 따라갈 수밖에 없어요."

자생력을 갖춰나가지 않으면 국내 스포츠계가 어려운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국내 프로야구도 이제 스포츠 산업으로 빨리 진입해야 합니다. 구장 광고권이나 장기임대 운영권 부분에서 지자체로부터 더 많은 분배를 받아야 합니다. 구장에서 프로야구 경기가 열리니까 광고가 들어오고 관중이 드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자체도 야구단의 역할을 인정하고 더 많은 이권을 나눠가져야 합니다. 이러다 프로 스포츠가 축소된다면 모두의 손해입니다.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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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스포츠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저변 확대도 필수다. 야구장은 전국 각지에 흩어진 축구장이나 농구장과 비교해 턱없이 부족할 뿐더러 새롭게 짓는데도 각종 규제가 많은 편이다.

야구를 사랑하는 인구는 많은데, 즐길 곳이 없는 것.

"현재 전국에 야구 동호회가 약 2만개 정도 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그런데 7년 전만 해도 야구장은 전국에 160여개가 전부였어요. 4대강을 개발할 때도 축구장과 농구장은 있었지만, 야구장은 부족했습니다. 구장 시설이 없으면 재능있는 야구 선수들을 키울 수 없어요. 그만큼 프로야구 전반에도 악재입니다."


◇기부…"야구계 새로운 '문화'가 생겼으면"

허 위원은 빈 스컬리처럼 이름을 딴 거리는 없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딴 야구장은 총 세 개나 된다. 대중에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크고 작은 장학사업과 야구 물품 지원 사업도 꾸준하게 이어오고 있다.

"저와 스컬리를 비교할 수 있겠어요? 대신 강진과 익산, 캄보디아에 야구장을 지었습니다. 거리는 없지만, 꼬마들이 이곳에서 야구를 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이 밖에도 고양시 다문화 가정팀인 '무지개 야구단'도 운영하고 있는데, 반응이 참 좋습니다."

스포츠인들의 기부 문화 정착은 허 위원이 실천하고 싶은 부분 중 하나라고 한다. 전 세계를 주름잡는 빼어난 스포츠 스타 중에는 각종 기부로 선행하는 사례가 많다. 받은 만큼 돌려주는 문화를 통해 스포츠계도 선순환 하며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허 위원의 생각이다.

"우리나라는 성적지상주의 문화에 비해 자신이 받은 영예를 사회에 환원하는 문화는 부족한 편입니다. 골프계에서는 최경주가 기부를 활발하게 하고 있어요. 그가 실력 못지 않게 인성으로도 인정받는 이유죠.

최근 롯데의 강민호가 야구장을 지었지요. 이런저런 선행도 하고 있고요. 기부는 꼭 돈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에요. 돈 대신 자신이 가진 재능을 기부하면 됩니다. 야구 성적은 감독과 선수들이 내고, 저는 이런 기부 문화가 야구계에 정착되는데 일조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어떻게 야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영화 '머니볼'에는 주인공인 빌리 빈 오클랜드 단장이 '어떻게 내가 야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라는 말을 하는 장면이 두 차례 나온다. 끝까지 결과를 예측할 수 없고, 누구든 노력에 따라 새로운 승리를 써내려갈 수 있는 야구의 매력.

허 위원 역시 평생 해 온 야구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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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루게릭 병 환자들을 돕기 위한 `아이스 버킷 챌린지` 에 참여한 허구연 해설위원 ]


"요즘 '흙수저' '금수저' 라는 단어가 화제가 됐죠? 야구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추신수, 이대호, 박병호가 부자였나요? 오히려 야구는 '흙수저'가 더 나을 수 있어요. '헝그리 정신'이 있어야 더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승부근성이 있게 마련이니까요.

계층과 상관없이 오직 실력으로만 공개된 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분야가 스포츠고 또 야구입니다. 야구는 마지막까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종목입니다. 시간 제한이 아닌 횟수 제한의 경기에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야구를 저는 사랑합니다."


제 2의 류현진, 강정호, 이대호가 나오길 바랄 뿐이다.

"과거에는 KBO에서 직행한 우리 선수들이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저평가됐습니다. 그러나 몇 년 사이 우리 야구를 보는 시선이 확 달라졌지요. 여전히 고등학교나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 무대에 도전하는 유망주들이 참 많습니다. 물론 도전은 좋은 것이죠.

하지만, 성공률이 무척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KBO를 거쳐서 해외에 더욱 원활하게 나갈 수 있는 방안 등을 모색해야 할 때입니다. 또 유소년들이 공부를 하면서 운동을 할 수 있도록 교육부의 관심도 필요하고요. 힘들다는 생각이 들 틈이 없어요."



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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