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연이 전하는 야구의 모든것

[윤현주의 맛있는 인터뷰] 야구를 연주하는 아티스트 허구연 MBC 해설위원 - 부산일보 (2019.7.16)

허프라 ㅣ 2021.04.19 14:53

“해설자는 철저히 준비해야, 100개 준비해 10개 써먹으면 성공”
윤현주 기자 hohoy@busan.com
                   

[윤현주의 맛있는 인터뷰] 야구를 연주하는 아티스트 허구연 MBC 해설위원

               

허구연 MBC 야구해설위원 자신의 집무실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그는 “해설은 100개 준비해 10개 써먹으면 성공하고, 10개 준비해 10개 다 써먹으면 실패한다”고 말했다.
    허구연 MBC 야구해설위원 자신의 집무실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그는 “해설은 100개 준비해 10개 써먹으면 성공하고, 10개 준비해 10개 다 써먹으면 실패한다”고 말했다.



“가쓰요, 가쓰요, 독도를 넘기는 홈론, 저 공은 대마도까지 가쓰요~.” 2008년 베이징올림픽 한·일 야구전에서 이승엽이 8회 극적인 홈런을 터뜨리자 허구연 해설위원은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통쾌한 해설로 국민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MBC 야구 해설위원 허구연(68). 그는 38년째 야구 해설을 해 오고 있는, 야구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많은 스포츠 채널이 생겨나면서 야구 해설자들이 넘쳐나지만 그 누구에게도 허구연은 ‘넘사벽’이다. 방대한 데이터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구석구석 긁어주는 유쾌한 그의 해설은 일흔을 앞둔 그를 여전히 독보적 위치에 올려놓는다.

지상파·케이블 양쪽 전속 해설자

1주일에 많게는 다섯 번까지 해설

야구DB 구축 위해 2002년 KSN 설립

해설에 필요한 자료 저장·분석·생성도

해설은 모르는 것 아는 척하면 안 돼

확실한 것만 말하고 틀렸으면 수정해야

한일은행 시절 정강이 다쳐 4차례 수술

죽어라 공부해 대학원 진학하며 은퇴

특기자제도 문제, 운동선수도 공부해야

롯데 바뀌려면 그룹 오너부터 변해야

구단에 재량권 주고 프런트 전문화 필요

사장이나 단장 임기 5년은 보장해 줘야

내 꿈은 인도차이나 5개국 대회 여는 것

은퇴하면 그곳에서 야구 보급할 계획

프로야구가 열리지 않는 월요일에 서울 마포구 마포대로 109 ㈜KSN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의 집무실에는 장명부, 오 사다하루(왕정치), 조 디마지오, 토미 라소다, 놀런 라이언, 류현진 등 세계적인 야구 스타들과 함께 찍은 사진과 벤 쉬츠, 박찬호, 빈 스컬리, 조 모건, 이치로 등 유명 선수들의 버블 헤드(미니 인형)들이 빼곡 놓여 있어 그의 야구 이력을 짐작케 했다.

허 위원이 세계적인 야구 스타들과 함께 찍은 사진과 스타들의 버블 헤드들.
    허 위원이 세계적인 야구 스타들과 함께 찍은 사진과 스타들의 버블 헤드들. 
       

-한 주에 해설은 몇 번 하고 있나?

“MBC 지상파와 케이블(MBC플러스) 양쪽에 전속 해설자로 일하고 있다. 시즌 중에는 1주일에 적어도 4차례 해설을 한다. 류현진 해설을 전담하고 있어 많을 땐 5번까지 한다. 굉장히 바쁘다.”

-KSN(Korea Sports Network)은 어떤 회사인가?

“2002년 국내·외 야구 DB 구축을 목적으로 만든 회사이다. 현대 야구는 갈수록 복잡해져 해설자 개인이 자료를 다 챙기는 게 불가능하다. 그래서 내 해설을 지원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었다.”

직원이 3명인 KSN은 허 위원의 스케줄을 관리하고 해설에 필요한 자료를 저장·분석·생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허 위원은 “회사 운영 경비만 한 달에 2000만 원가량 든다. 내 해설료를 거의 이곳에 쏟아넣는다”고 말했다. 국내 해설자 중 이처럼 해설 지원 회사를 둔 경우는 보기 힘들다.

-해설은 어떻게 준비하나?

“매일 오전 9시까지 회사에 출근해 5대의 모니터를 통해 KBO리그, 메이저리그, 일본리그 등을 시청하고 공부를 한다. 오후엔 헬스를 하고 오후 6시 30분부터 국내 야구 해설을 시작한다. 해설 전에 자료를 다 챙겨야 한다. 국내 야구는 대개 밤 11시가 넘어야 마무리가 되는데, ‘하이라이트’ 방송에도 참여해 개인적 시간을 낼 틈이 없다.”

그는 시즌 중에는 친구들을 거의 만나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24시간 오로지 해설만 생각하고 전력투구하는 셈이다.

-자신만의 해설 원칙 같은 게 있나?

“해설은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면 안 돼. 확실한 것만 말하고, 틀렸으면 곧바로 수정해야 해. 해설이 신변잡기로 흐르면 곤란하다. 해설자는 경기 중 어떤 상황이 발생해도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가 돼 있어야 하지. 그래서 나는 철저하게 준비한다. 예컨대 100개를 준비해서 10개만 써먹으면 성공하는 방송이 되고, 10개를 준비해 10개를 다 써먹으면 실패하는 방송이 되는 거지.”

“좀 과장하면 야구 해설은 예술”이라고 말하는 허구연. 그는 풍부한 데이터와 경험이 결합돼야 좋은 해설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예컨대 LA 다저스의 류현진이 10승에 성공한 5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경기를 복기해 보자. 류현진은 윌 마이어스에게 볼넷을 내 줬다. 허 위원은 생중계에서 ‘고의사구’ 가능성을 언급했다. 류현진은 경기 후 고의로 걸렀음을 고백했다. 허 위원은 “류현진이 마이어스에게 약했다는 데이터와 그의 표정 등을 종합적으로 보고 추측했다”고 말했다.

-해설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1982년 프로야구 원년부터다. 고려대 대학원(법학) 졸업 후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데 MBC에서 해설을 부탁했다. 나는 한 번만 하는 것으로 알고 갔는데, 평이 좋다며 계속 해 달라고 종용했다. 할 수 없이 받아들였다.”

허 위원은 당시의 흥미로운 일화를 소개했다. 연봉 책정과 관련, 그는 2200만 원을 요구했다. 국내파 선수의 최고 연봉이 2200만 원이고, 압구정동 30평형 아파트 가격이 2200만 원이었다. 그는 그 수준은 맞춰 달라고 요구했고, 결국 1000만 원 언저리에서 타결됐다고.

허 위원이 경남중 시절 받은 타격상 트로피.
    허 위원이 경남중 시절 받은 타격상 트로피.

-경남중고 야구부에서 3, 4번을 칠 만큼 야구를 잘했는데, 왜 관뒀나?

“대학 졸업 후 한일은행 야구부에 들어갔는데, 정강이가 부러져 4차례나 수술을 받는 큰 부상을 했다. 병상에서 죽어라 공부해서 고려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대학도 법대로 가지 않았나?

“처음엔 체육학과 특기생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공부를 안 시키는 거야. 그래서 예비고사를 쳐서 합격 후 법대로 갔지. 왜 법대로 갔느냐 하면 운동선수는 무식하다는 편견을 불식시키고 싶었어. 법대에서 공부해서 사시에 합격한 후에도 계속 운동을 하려고 했지. 운동을 하다 보니 그건 좀 무리더군.(웃음)”

허 위원은 엘리트 위주의 선수 육성 방식에 강한 불만을 가진 사람이다. 운동선수도 똑같이 공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명의 스타를 키우기 위해 99명이 희생돼야 하는 현행 특기자 제도는 개선돼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한때 롯데 자이언츠 코치도 지냈는데, 롯데의 부진을 어떻게 보나?

“롯데가 살아나려면 그룹에서 야구단에 대한 인식을 확 바꿔야 한다. 내가 느끼는 롯데는 결재 과정이 너무 보수적이야. 사장, 단장, 감독을 욕해서 될 일이 아니다. 그룹 오너가 변해야 한다. 야구단이 신속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재량권을 부여해야 한다. 또 하나, 프런트의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 김응용, 강병철 등 특출한 감독이 우승시키던 시절은 끝났다. 프런트가 전문화돼야 할 때이다. 그러려면 사장이나 단장의 임기를 5년은 보장해 줘야 한다. 2년마다 바꿔 버리면 전문성을 가지기 힘들다.”

허 위원은 롯데를 비롯해 재벌 소속의 프로 구단들이 미국 야구의 트렌드를 못 따라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번 시즌 롯데의 5강 가능성에 대해선 고개를 가로저었다.

-KBO의 위기론이 나오고 있는데, 그 요체는 뭔가?

“관중 수 800만 시대는 일종의 착시현상이다. 대구구장 등 일부 구장의 수용 능력이 늘어나서 그렇게 된 거지 평균 관중 수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10구단 체제에선 1000만 관중은 돼야 한다고 봐. KBO의 마스터 플랜 부재, 경기의 질적 저하, 음주운전 등 나쁜 뉴스 속출, 라이벌전 실종 등이 위기의 원인이다.”

빼곡하게 정리해 놓은 기록지.
    빼곡하게 정리해 놓은 기록지.

-부산 야구 발전을 위해선 새 구장을 하루빨리 건립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당연하다. 역대 부산시장을 만나 보면 롯데가 세금을 부산에 떨어뜨리지 않아 미워서 야구장을 못 지어 준다고들 했다. 잘못된 생각이다. 부산국제영화제만 축제냐. 야구도 축제다. 롯데가 1년에 70번을 이긴다면 70번을 축제하는 거다. 말이 롯데구단이지만 사실은 시민구단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단지 야구 경기만 하는 스타디움을 생각하지 말고 놀이와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원 개념의 복합시설 건립을 생각할 때다.”

자기가 좋아하는 야구를 했고 오래 해설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허구연. 그는 이제 은퇴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여생의 소망은 뭘까?

“내가 2010년 캄보디아에 지어 준 ‘허구연 필드’가 있다. 베트남에도 야구장을 건립하도록 주선했다. 내 제안으로 이만수는 라오스에서 야구를 가르치고 있다. 나의 꿈은 인도차이나 반도 5개국이 모여 국제대회를 하는 거다. 우리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등 성적만 냈지 세계 야구계에 공헌한 게 없잖아. 은퇴하면 그곳에 가서 야구를 보급하고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야구 지도도 할 계획이다.”

유헨진(류현진), 돼쓰요(됐어요) , 베나구(변화구)…. 여전히 서부경남(진주) 사투리를 내뱉는 허구연. 그러나 사람들은 사투리가 뒤섞인 그의 해설을 외면하기보다 정겹게 여기면서 TV 앞에 다가앉는다. 야구에 대한 그의 열정과 진정성을 알기 때문이다. 그의 해설 인생은 9회쯤 와 있는 듯하다. 벌써부터 그의 부재가 아쉽다.

윤현주 선임기자 hohoy@busan.com

사진=김종호 기자 kimjh@

야구장 40여 개 만들어낸 ‘야구 전도사’


허구연 MBC 야구 해설위원은 해설뿐만 아니라 행정가로서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그는 2009년부터 2017년까지 9년간 한국야구위원회(KBO) 야구발전위원장을 지내는 동안 새 구단 창단과 야구 인프라 구축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는 감독, 사장, 정치 입문 등의 유혹을 다 뿌리치고 해설에 전념하면서 야구 발전을 위해 열정을 태웠다. 그는 9구단(NC)과 10구단(KT) 창단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의 불 같은 열정과 뛰어난 인맥 덕이 컸다. 대구·광주·창원·대전 등 프로야구 구장뿐만 아니라 각 지방자치단체의 숱한 야구장 건립에도 그는 관여했다. 특히 축구장밖에 없던 4대강 유역에 40여 개의 야구장을 건립한 것도 그의 조언과 건의 덕분이다. 그는 “야구발전위원장을 지낼 때 3년 동안 내 차로 15만㎞를 달린 뒤 폐차했다”고 말했다.



[출처: 부산일보]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19071618202925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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